인생(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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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살기
잠깐이지만 자격증 취득에 빠졌던 적이 있다. 자격증 개수가 늘어날수록, 마치 내 존재를 인정받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을 수 있었으니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적인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졸업증 한 장을 얻기 위해 수년을 갖다 바친다. 하지만 자격증으로도, 졸업장으로도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도대체 내 존재는 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흘러간 시간들은 나를 대변해주지 못했다. 이 세상은 온통 증명할 것 투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자신의 쓸모를 남에게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너무나 숨이 막힌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뒤집기로 했다. 사실 내 본질은 파충류나 ..
2020.05.15 -
나의 아이덴티티, 키덜트
내가 쓴 글들을 쭉 돌아보니 '어려서부터'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쓸 때면 유독 자전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내면의 어떤 것을 쥐어짜 내야 글이 써지는데, 나의 내면에는 아직도 아기가 살고 있는 듯하다. 옛날 감성에 멈춰있다. 어릴 때 듣던 만화 노래를 들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키덜트'라는 말이 생긴 걸 보면 말이다. '키덜트'는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이다. 보통 키덜트라고 하면 고가의 장난감들을 수집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다. 요새는 옛 감성을 소유하고만 있어도 키덜트라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키덜트라는 말은 나에게 너무나 찰떡같은 표현이다. 키덜트는 나의 정체..
2020.05.12 -
세상에 나를 표현하기
어릴 때부터 나는 나만의 세상이 뚜렷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내게는 전부였기에, 타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커가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귀찮다는 이유로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산 시간이 아까울 만큼, '나를 표현하며' 사는 삶은 생각보다 너무 즐거웠다. 그동안은 뭐가 무서워서 가만히 살았을까? 아마 사회적인 분위기와 교육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발표가 제일 쉬웠는데,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어려워졌다. 선생님 위주의 수업방식과 고요한 교실 분위기. 수업시간에는 정숙이 미덕이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면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봐..
2020.05.11 -
괴로운 두통
종종 두통이 갑자기 온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워서 쉬거나 자면 좀 나아진다. 그런데 요새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도 두통이 계속될 때가 있다. 일어나서 활동하면 괜찮아지긴 하는데, 머리가 아픈 그 느낌이 정말 싫다. 정확한 두통의 원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면 두통이 찾아온다. 가끔씩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져 뇌가 과부하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만 생각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꼭 고민이 많아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 이를테면 미래에 하고 싶은 일 따위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뇌가 터져버릴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래도 두통이 괴로운 것은 매한가지다. 아픈 거 너무 싫다. 고통 없는 세상이 있..
2020.05.09 -
반복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어려서부터 어느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못 견뎠다.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동아리나 종교집단, 또래 모임, 알바 등등 오랫동안 지속한 일이 별로 없다. 그나마 대학교는 자유로운 편이라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성격이 반복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매일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되면 우울증이 온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나는 그 정도가 강할 뿐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발적인 행동'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상관이 없다. 행동의 동기가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한계치가 달라진다. 학생 때는 학교 다니기가 정말 싫었다. 빨리 졸업..
2020.05.08 -
아끼다 똥 된다.
올해도 핑크색 코트는 못 입었다.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건데...', '운동하러 나가는 건데...'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아끼며 입지 않은 것이 몇 년째다. 그 사이 코트의 색깔도 점점 바래져 간다. 입었던 날보다 옷걸이에 걸려만 있던 시간이 더 길다. 정말 미련한 짓이다. 예쁘고 좋은 옷만 입어도 부족한데, 막 입는 옷만 계속 입게 된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맞다. 옷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해야지', '몇 년 후에 해야지'. 현실에 치이다 보니 좋아하는 일은 늘 뒷전이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시간은 흐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시간 낭비'란 없다. 난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게 먼저라고, 돈이 많으면 그때 하고 싶은..
2020.05.05